불교의식 ⑥ - 재의식(49재(四十九齋)/100일재(百日齋) > 불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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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식 ⑥ - 재의식(49재(四十九齋)/100일재(百日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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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ramu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12-03 09:25 조회14,6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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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49(四十九齋)/100일재(百日齋)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49재는 사람이 죽은 날로부터 매 7일째마다 7회에 걸쳐서 49일 동안 개최하여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비는 천도의식이다.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중음신(中陰神)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이 기간에 다음 생이 정해질 때까지 불공을 드리고 재를 올려 선근공덕을 지어 주면 좋은 곳에 태어난다고 한다.

를 지내는 절차는 시련(侍輦)을 하여 영가와 신중과 제불보살들을 모셔 재장으로 향한다. 재장에 이르러 극락도사 아미타불과 좌우보처 관음.세지보살께 예불드리고 재를 지내게 된 동기를 밝힌다. "생사의 어두운 길은 부처님의 등불을 의지하여야만 밝힐 수 있고 고해의 깊은 파도는 진리의 배를 타야만 건널 수 있습니다.
 
사생육도가 진리에 어두어 개미가 쳇바퀴 돌듯 하고 팔난삼도가 뜻을 방자히 하여 누에가 제 집 속에 안주하여 죽어가는 것 같습니다. 슬픕니다. 생사의 멀고 먼 감옥이여! 마음의 근원을 깨닫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능히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의 힘을 빌리지 아니하고는 벗어나기 어려우므로 지금 사바세계 모소에서 누구누구가 49재를 지내 영가를 천도하고자 하오니 한 생각 분명히 하여 이 도량에 내려오셔서 저희들의 공양을 맛보시고 전생 빚을 갚고 깨달음을 얻으소서!" 이렇게 소()를 읽어 재의 내용을 밝힌 뒤에 대령.착어를 하고 요령을 흔들어 고혼을 청한다.
 
'
인연은 모였다 흩어지는 것, 툭 터진 마음으로 왕래가 자재하여 부처님의 가피로써 법공을 받으소서.'하고는 꽃을 올리고 차를 대접한 뒤 관욕을 하여 전생에 지은 모든 업의 때를 씻는다. 이어 부처님께 예배하고 법문을
  듣고 불공을 드린 뒤 시식을 한다.

시식이 끝나면 앞서 시령으로 영가를 모시듯 다시 연대에 싣고 봉송장에 이르러 봉송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49재는 시련으로 시작하여 관욕.청법.불공.시식으로 끝나는 긴 의식이 집중적으로 행해져 바라춤이나 착복(나비춤).하청(下請)을 하지 않아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전반적인 불교의식이라 볼 수 있으나 이 속에 민속신앙도
  가미되어 있는 장엄한 재의식이다. 100일재는 100일 만에 49재에 준하여 행한다. 

 

 

7. 제사(祭祀)와 영반(靈飯)

 

   신령에게 음식을 바치며 기원을 드리거나 돌아가신 이를 위해 추모의식을 갖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천지 자연의 변화에 대하여 경이로움을 갖고 여기에 초월자 또는 절대자를 상정하고 삶의 안락을 기원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냈으며, 하늘과 땅.해와 달.별과 산.강에도 초인적인 힘이 있다고 믿고 거기에 안녕과 복을 빌었다.

또 인간이 죽은 뒤에는 혼령(魂靈)이 있다고 하여 혼령을 숭배하였는데 이로부터 조상숭배의 의식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부여에서는 영고(迎鼓), 고구려에서는 동맹(東盟), 예맥에서는 무천(舞天) 등의 제천의식이 유행하였고, 국가의 형태를 갖춘 뒤에는 사직과 종묘.원구(園丘).방택(方澤). 선농(先農).잠단(蠶壇)에서 제사들 드렸으며 사가(私家)에서는 초하루와 보름에 사당에 신위를 봉안하고 분향하였다.

불교에서는 윤회를 믿기 때문에 조상이나 영가의 위패를 절의 법당에 모시고 조석예불에 독경을 빼지 않고 있으며 7월 백중에는 이들을 위해 특별 법회를 열기도 한다. 이것은 목련존자가 그 어머니를 천도한 우란분재(盂蘭盆齋)에서 연유된 것이지만 불교에서의 제례의식은 장엄하고도 장중하다.

대령(對靈).관욕(灌浴)은 물론 법사스님들을 초청하여 법문을 일러주는 경우도 있고 가족이 함께
  독경의식이 더있고 유교처럼 형식을 강조하지 않고 정성을 중시하고 있으며, 제사시간도 특별히 밤과 낮을 구별하지 않고 행한다. 출가자인 승려의 제사는 일반 속인의 제사와 구분하여 영반이라 한다.
 
영반에도 종사영반(宗師靈飯)과 일반적인 상용영반(常用靈飯)이 있다. 먼저 종사영반은 거불로 시작하여 종사의 혼을 청한다. 착어와 진령게.소청진언을 하고 제자들이 청하오니 강림하셔서 공양을 받으시라고 아뢴다. 향화청.가영. 다게를 하여 공양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고 <반야심경>으로 공양하고 여러 진언을 한 뒤 소대 앞에 이르러 귀령편(歸靈篇)을 한다.

상용영반의 거불과 청혼은 종사영반과 같고 착어를 한 뒤의 진령게 등도 그 순서는 종사영반과 같으나 그 내용이 조금 다르다.

   도량에 와서 법식을 받고 극락왕생하라는 내용으로 돼 있다.

 

 

재의식           

 

   1 ()

   2 영산재(靈山齋)

   3 수륙재(水陸齋)

   4 예수재(預修齋)

   5 무차대회(無遮大會) 

 

 

1. ()

 

   49.100일재와 같이 때를 맞추어 청정한 마음으로 불승(佛僧)께 공양을 올려 공덕을 닦는 의식이다. 재의 어원은 범어uposadha에서 유래되었는데 스님들의 공양의식을 뜻한다. 대개 공양은 집안의 경사나 상사(喪事).제사 때 이루어지므로 나중에는 제사의식으로까지 인식되었다.

<
목련경>에는 공양을 받은 스님들의 숫자에 따라 백승제.오백승재.천승재의 명칭이 나오고 있고, 중국에서는 양무제가 사람의 숫자에 제한하지 않고 누구나 자유로이 동참할 수 있는 무차대회 (無遮大會)를 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반승(飯僧)이라는 명칭으로 곳곳에 나오고 있다.
 
원래 이 재는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간단히 불전의식을 집행하고 공양에 임했으나 그것이 점차 큰 법회의식으로 발전하면서 인왕백고좌도량(仁王百高座道場)이니 금강명경도량(金剛明經道場)이니 하는 호국법회의 형식으로까지 번져나갔으며 나중에는 수륙재(水陸齋) 영산재(靈山齋).49.백일재에 이르기까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을 위해 베풀어지는 일체의 행사를 통칭하는 말로 되었다.

그런데 재공의식에는 반드시 몸과 입과 마음을 정재하고,
  만드는 음식도 청정해야 하므로 음식을 준비하는 곳을 정재소(淨齋所)라 한다. 일을 각기 분담하는 재시용상방(齋時龍象榜) 또는 육색방(六色榜)이라 하여 그 명목을 색색의 종이에 써서 붙였다.

인도의 재는 각기 자기 집에서 준비한 공양물을 초대소로 옮겨 공양하거나 절로 가지고 가서 공양하였으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깊은 산속에 절이 있고 또 시중에 있다 하더라도 운반하기가 번거로워 절에다 맡겨 재공을 하게 하므로 이와 같은 전문적인 육색방이나 용상방이 생긴 것이다. 아무튼 불교에서 재는 출가승려들의 공양대접으로부터 기도. 불공.시식.제사.낙성.기타 법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2. 영산재(靈山齋)

 

   49재 중에 장엄하게 치러지는 영가 천도의식이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산회상을 재현하여 영가에게 장엄한 법식을 베풀어 극락왕생하도록 하는 것이다.

먼저 도량을 장엄하는데 영산회상을 상징화하여 법당 밖에 괘불(掛佛)을 시설하고 의식에 범패 등의 불교음악을 공양으로 장엄한다. 괘불을 내어 단에 모시는 것을 괘불이운이라 하는데 이때 괘불 앞에서 제신중에게 도량호법을 청하는 옹호게(擁護偈)를 하고 불덕을 찬탄하며 영산에서 부처님을 도량으로 모셔 오고 차공양 의식을 행한다.

이때도 범패와 의식무용이 있다. 단의 구성은 법당과 같이 상단은 괘불앞에 설치하고 향...과일.등불.쌀 등을 공양하고, 중단은 신중단이고, 하단은 그 날의 영혼에게 제사드리는 영단(靈壇)이다. 의식을 행하는 스님들도 용상방(龍象榜)을 구성하는데 증명법사, 설법을 맡는 회주, 의식을 집행하는 법주, 의식무와 반주를 하는 어산승(魚山僧)으로 태징 2.바라 4.고수.종두와 범패승. 범음승이 있다.
 
법의를 입은 의식승이 앞에 앉고 뒤에 신도들이 자리한다. 그 절차는 49재와 마찬가지로 시련에서부터 시작하여 의식단 악에 이르고 잠시 정좌한 뒤 각단마다 권공예배를 하고 기원을 아뢰고 가피력을 기원한다. 영단에 이르러 시식을 하고 회향하게 되는데 의식승을 선두로 모든 의식에 참가한 대중이 의식도량을 돌면서 독경 등을 행한다.

이때 행렬을 십바라밀정진을 나타내는 원형.반월형.실날형.우물자형. 쌍환형 등으로 돈다. 끝으로는 봉송편이 있다. 이 의식은 자득자수(自得自修)라는 수행의례에서 나아가 기원(祈願). 회향(廻向).추선공양(追善供養)이라고 하는 교리적 발전과 함께 발전된 의식이며, 우리나라 전통음악과 무용이 한데 어우려져 있고 민간신앙까지도 수용한 불교의식이자 우리의 무형문화재다. 잘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3. 수륙재(水陸齋)

 

   물과 육지에서 헤매고 있는 외로운 혼령들에게 법과 음식을  베풀어 구제하는 의식이다. 이 의식은 중국 양나라 무제에 의하여 시작되었다고 한다.

양무제는 평생 수백 채의 절과 수만 구의 불상을 조성하고 매일 수천 명의 스님들에 반승을 하였는데, 유주무주의 고혼들을 위해 수륙제를 지내면 큰 공덕이 있다는 말을 듣고 금산사에서 큰 재를 베풀었다.

그 뒤 송나라 때에 동천(東川) <수륙문(水陸文)> 3권이 나와 더욱 성행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 갈양사(葛陽寺)에서 광종 21(970)에 처음 베풀었다. 선종 때에는 태사국사 최사겸(崔士兼) <수륙의문(水陸儀文)>을 송나라에서 들여와 보재사(寶齋寺)에 수륙당을 열었고, 혼구(混丘) <신편수륙의문(新篇水陸儀文)>을 찬술하여 더욱 성행하였다.
 

조선시대 숭유배불 정책으로 불사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태조는 진관사(津寬寺)를 나라의 수륙재를 여는 사사(寺社)로 지정하고 견암사.석왕사.관음굴 등에서 고려 왕씨들을 위한 수륙재를 베풀었다.

이 수륙재는 유신들의 많은 폐지 상소에도 불구하고 매년 2 15일에 거행되었으나, 태종 15(1415)부터는 1 15일로 바뀌어 종종 10(1515)까지 시행되다가 결국 유생들의 반대로 폐지되었다.

성할 때는 효령대군이 시주가 되어 한강에서 개설하였고, 선조 39(1606)에도 창의문 밖에서 행하였는데 양반과 평민이 길을 가득 메워 인산인해를 이루는 무차대회를 이루었다고 한다. 수륙재의 절차는 <범음집(梵音集)> <산보집(刪補集)><작법귀감(作法龜鑑)> <석문의범(釋門儀範)>이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그 취지는 같다.
 

<
석문의범> 에서는 수륙무차평등재의(水陸無遮平等齋儀)라고 하여 모든 영혼을 평등하게 천도받게 한다고 한다. 그 내용은 재를 지내는 동기를 밝히는 소가 있고, 영혼들이 불보살님께 설법을 들어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키게 해 주며, 다음으로 명부사자를 초청하여 분향공양을 하고 축원을 한다.

이어 오방신장과 명부사자 호법선신께 공양하고 영혼을 목욕시킨 뒤 불보살께 나아가 법문을 듣고 불공 축원한 후 시식을 베풀어 유주무주 고혼을 천도한다. 이때 의식은 범패와 법무가 중심이 되고 태징.요령.목탁..피리.젓대 등 다양한 소리가 조화를 이루어 높은 예술성을 느끼게 한다.
 

 

 

4. 예수재(預修齋)

 

   살아 있을 때 사후를 위하여 공덕을 쌓아서 지옥고를 받지 않고 극락 왕생하도록 법의 공덕을 저축하는 의식이다. 원래는 중국 도교의 시왕신앙(十王信仰)을 불교에서 수용한 것이라고 한다. 이 의식은 <예수시왕생칠재의(預修十王生七齋儀)>라는 의식집에 근거한다.

의식문에는 다신교적인 내용이 많이 표함되어 있는데 명부시왕과 그 권속이 신앙의례의 절차에 많은 양을 차지하여 지장신앙과 관계되어 있다. 또 설단 양식으로 보면 삼신불단을 법당 안에 설치하고 동쪽에 지장단을, 서쪽에 호법선신중단을, 법당 밖에 염도대제 이하 명부시왕단을 설치한다.

또 법당의 동쪽에 하단위(下壇位), 서쪽에 추루단(醜陋壇), 그 아래쪽에는 차례대로 고사단.종관단.마기단을 설치한다.
  이와 같은 단의 배열은 밀교적 신앙구조를 나타낸 것이다. 이것은 생전에 미리 명부시왕전에 복을 많이 쌓아서 사후 명부의 시왕을 만나면 극락에 갈 수 있는 심판을 받도록 하는 데 있다. 명부시왕은 도교적 신앙으로 죽은 뒤에는 10번 지은 바 죄의 과보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데에서 온 것이다.

의식의 절차는 이미 설치한 단에 공양 예경하는데 살아 있을 때 자신의 생년월일에 따라 갚아야 할 빚이 있어서 부지런히 경을 읽고 보시를 행해야 한다. 즉 갑자생의 경우 빚이 5 3천 관이고 읽어야 할 경전이 17권이며 내야 될 곳은 명부의 제 3곳간 육조관(六曹官)이다.

이 빚은 예수재에 경전을 읽어서 갚게 되고 또는 필요한 경전을 구입하여 불단에 올리는 것으로 갚는다. 보시는 만들어진 지전(紙錢)을 각자에 맞는 금액을 시왕전에 바치고, 영수증을 받아 한 조각은 태우고 나머지는 잘 보관하였다고 죽은 뒤에 가지고 가서 시왕전에 바친다.

이를 금은전이라 한다. 금은전의 유래는
  <예수천왕통의(預修天王通儀)>에 다음과 같이 나나타 있다. "<명도전(冥道傳)>에 이르기를 유사대국의 왕 빔비사라가 15세에 등극하여 25년 동안 예수시왕칠재(預修十王七齋) 49번 하였는데, 갑자년 12 8일 경신 야밤에 갑자기 명부의 사자가 와서 따라 갔는데 가는 도중 풀과 나무가 없는 흰 산이 있어 물으니, 이는 남염부 제중생들이 법답게 은전을 만들지 못하고 정성이 부족한 파전들이 버려져 저 산을 이루었다고 하므로 왕은 돌아와 정성껏 금은전을 조성하고 점안의식을 성대히 거행하여 전생의 빚을 갚음으로써 장수하였다." 12생 상속의 죄인들이 명부시왕께 올리는 금은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자생 (子生)에는 갑자생은 5 3천관, 병자생은 7 3천 관, 무자생은 6 3천 관, 경자생은 11만관, 임자생은 7만 관으로 각각 원조관(元曹官).().(). ().맹조관()에게 바친다. 이렇게 육십갑자 자기의 해당 생년에 따라 값이 정해져 있어 이에 맞게 시왕께 바친다.

금은전은 49재나 100일재 등에서도 이용된다. 이 의식은 개인의 발원에 의하여 행하지 않고, 많은 대중이 동참하여 행하는 공동체적인 종교의식이다.
 

 

 

5. 무차대회(無遮大會)

 

   승속과 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하여 법문을 듣고 잔치를 열어 물건을 베푸는 일종의 법회이다. 수륙재가 수륙무차평등재의(水陸無遮平等齋儀)라고 하여 물과 육지의 모든 유주무주 고혼에게 평등하게 시식을 베풀어 주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로 모든 중생에게 불법의 공덕이 골고루 미치도록 잔치를 즐기고 시주가 물건을 베풀며 불경을 강의하고 불교의 이 이치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하는 법회였다.

이는 보시정진에 근거하여 부처님의 덕을 모두에게 나누어 주는 신앙적 의미도 있었다. 또 이 대회를 통하여 왕은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을 달래 주고 민심을 수습하려는 의도에서 국가가 시주가 되어 베풀기도 하였다.

고려 태조 23(940)의 신흥사 공신당 신축 때 무차대회가 있었고, 고종 3 (1216)에 미륵사 공신전 중수 후, 광종 때의 무차대회, 의종 19(1165)의 궁중 무차대회의 기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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